산업 유산을 문화 자산으로 가꾸다, 영도 깡깡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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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는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다. 해방 이후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판잣집을 짓고 삶의 터전을 일구었으며, 1970년대 호황기에는 부산 조선업의 메카로 불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평동 깡깡이 마을이 있었다. 배 밑바닥의 녹을 쇠망치로 두드려 떼어내는 소리, ‘깡깡’ 소리가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시절이었다. 이후 IMF 외환위기로 한차례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0년대까지 러시아 선박 수리로 동네는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선박 입항이 끊기면서 조선소가 멈췄고, 일자리가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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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는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다. 해방 이후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판잣집을 짓고 삶의 터전을 일구었으며, 1970년대 호황기에는 부산 조선업의 메카로 불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평동 깡깡이 마을이 있었다. 배 밑바닥의 녹을 쇠망치로 두드려 떼어내는 소리, ‘깡깡’ 소리가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시절이었다. 이후 IMF 외환위기로 한차례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0년대까지 러시아 선박 수리로 동네는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선박 입항이 끊기면서 조선소가 멈췄고, 일자리가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하나둘 마을을 떠났고, 빈집이 늘어났으며 골목엔 고령의 주민들만 남았다. 이는 전형적인 축소 도시의 풍경이었다. 지역 소멸 위기를 경고하는 통계 수치들 속에서 영도는 부산 내에서도 재정 자립도가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대풍동 조선소. ⓒ 깡깡이예술마을사업 선박 도색 작업. ⓒ 깡깡이예술마을사업 수리선 입거 후 모습. ⓒ 깡깡이예술마을사업 주민이 중심이 된 도시재생의 시작 마을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 건 2015년부터다. 대평동이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선정되면서 ‘깡깡이 예술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을 어귀에 벽화가 그려지고, 폐건물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유람선이 취항했고, 마을 투어 프로그램도 만들어졌다. 미디어는 ‘문화재생의 성공 사례’로 조명했고, 전국에서 벤치마킹 방문단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깡깡이’는 낡은 산업의 흔적에서 하나의 문화 브랜드로 거듭났다. 페인팅 시티_동명기술창고. ⓒ 깡깡이예술마을사업 “처음엔 도시재생이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했고, 어떤 식으로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도 몰랐습니다.” 70년 가까이 대평동을 지켜온 박기영 씨의 말이다. 대평동 마을회의 회장을 맡으며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온 그는, 화려한 도시 브랜딩 스토리 이면에 주민들의 혼란과 학습의 시간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재생 사업을 개발 사업으로 착각한 주민들도 있었고, 일부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낯선 개념과 낯선 사람들, 낯선 변화들은 자연스럽게 마을 주민들의 불안을 초래했다. 페인팅 시티, 도선장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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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깡이예술마을사업 그럼에도 대평동의 문화재생이 궤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이곳이 가진 ‘오래됨’ 덕분이었다. “대평동은 오랫동안 어른들에서부터 쭉 단합된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분열되지 않았던 것이죠.”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주민들로 구성된 대평동 마을회는 이곳의 진짜 자산이었다. 여기에 2018년 ‘깡깡이예술마을’ 사업을 주도한 문화 예술 플랜비가 “주민 편에서 모든 일을 진행했다”라는 점도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주민 중심의 거버넌스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에서 흔히 듣는 말이지만, 대평동에서는 그것이 실제로 작동했다. ECB, 우리모두의 어머니, 2017, 벽화, 대동대교맨션. ⓒ 깡깡이예술마을사업 기획자들은 주민들의 언어로 소통했고, 주민들은 천천히 신뢰하기 시작했다. 공청회가 열렸고, 의견이 반영되는 과정이 투명하게 공유됐다. 마을 소유의 폐유치원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깡깡이 생활문화센터로 재탄생했으며, 그 과정 하나하나가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졌다. 행정과 기획자, 그리고 주민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간 시간이었다. 도시 브랜딩의 성공과 남은 과제들 깡깡이 예술마을은 성공했다. 적어도 외부의 시선에서는 그랬다. 이를 다룬 책이 여러 권 출간되었고, 굿즈가 만들어졌다. 예술가들이 찾아왔고, 관광객 또한 증가했다. ‘깡깡이’라는 단어는 낡은 산업의 흔적에서 문화적인 키워드로 전환됐고, 이는 마치 도시 브랜딩의 교과서처럼 보였다. 하지만 11월에 직접 찾아간 대평동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실제로 여름철 성수기를 제외하면 골목은 여전히 한산하다고 했다. 유람선과 투어 프로그램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지만 외부 변수에 취약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공간에서 일하는 이들 대부분은 자원봉사에 가까운 헌신으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깡깡이 예술마을을 벤치마킹하러 오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근데 그분들이 보는 건 결과뿐이에요.” 박기영 회장의 말처럼, 성공 사례를 보러 온 이들은 변화된 건물과 프로그램을 사진에 담지만 그 이면의 고단함은 보지 못한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 행정 지원 종료 후의 자립 방안, 관광지화와 일상 공간 사이의 긴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인근 흰여울 문화마을의 사례는 대평동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초기 예산 지원으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지만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 없이 예산이 끊기자 공간들은 방치되었고, 주민들은 관광객의 소음에 시달렸으며, 문화재생은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나버린 듯했다.
정리
대평동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걸어왔지만, 그 앞길이 평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행정 지원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자생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 주민과 외부 방문객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의 소박한 바람 인터뷰 말미에 들은 박기영 회장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거창한 비전도, 야심찬 계획도 아니었다. 그저 현재를 지키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었다. 그리고 그 소박함 속에 문화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 사업의 본질이 있었다. “앞으로 이 마을이 어떻게 변하면 좋겠냐고요?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더 낙후되지 않고 지금처럼만 되면 좋겠습니다.” 공업사 풍경 문화 예술은 쇠락한 지역을 재생시킬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유보적이다. 깡깡이 마을은 분명 변했다. 물리적 환경이 개선되었고, 외부의 관심을 받았으며, 주민들은 ‘도시재생’의 전문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거나 지역 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화 예술 사업이나 관광업이 지역소멸을 막는 완벽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대평동은 솔직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대평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다른 가능성이다. 도시재생이 성공하려면 화려한 브랜딩보다 단단한 공동체가 먼저라는 것, 외부 기획자가 주민의 언어로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변화는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성과를 과장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다음 단계가 보인다는 것이다. 대평동 물양장 그런 의미에서 깡깡이 마을의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산업유산을 문화자원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물도 예산도 브랜드도 아닌,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을 바라는 그 마음이 어쩌면 가장 지속가능한 비전일지 모른다. 화려하지 않아도, 느려도, 묵묵히 이어지는 일상이야말로 진짜 재생이 아닐까. 깡깡이 생활문화센터에서는 여전히 마을 주민들이 모여 차를 마시고, 골목에는 굴곡진 한국 근대사를 함께 살아온 이웃들의 인사가 오간다. 그 호흡이 계속되는 한, ‘깡깡이’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고단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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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7